신의 벼락에서 분(分) 단위의 사투까지: 뇌졸중 개념의 진화와 신경과의 정체성
From the Wrath of Gods to the Race against Minutes: The Evolution of Stroke Concepts and the Identity of Neur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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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뇌졸중(stroke)은 인류가 경험해 온 가장 극적이고 파괴적인 신경계 질환 중 하나이다. 어제까지 온전했던 한 인간이 찰나의 순간에 언어를 잃고 반신이 무너지며 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현상은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여 인류에게 근원적인 공포를 안겨주었다. 외상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이러한 신체적, 정신적 단절은 오랫동안 질병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 운명 혹은 신의 개입으로 여겨졌다[1,2].
본 종설에서는 고대 문명의 신화적 해석부터 현대의 분(分) 단위 급성기 재관류 치료에 이르기까지 뇌졸중을 대하는 인류의 인식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통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 기나긴 질병의 역사 속에서 신경과(neurology)라는 학문이 어떻게 “관찰하고 해석하는 자”에서 “시간과 사투하며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자”로 그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본 론
1. 벼락처럼 내리친 신의 분노: 고대의 시선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질병은 신의 맹렬한 분노나 악령의 소행으로 이해되었다. 갑작스러운 편마비와 의식 소실은 신의 저주로 해석되었고 치료는 사제의 주술에 의존하였다[3]. 고대 이집트의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에는 두부 손상과 관련된 마비 및 언어장애가 세계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Fig. 1) [4]. 그러나 당시 이집트인들은 인간 지성과 영혼의 중심을 심장(heart)으로 여기는 심장중심주의(cardiocentrism)를 따랐기 때문에 뇌는 미라 제작 시 긁어내 버려지는 부차적 장기에 불과하였고, 뇌졸중의 병소 역시 뇌의 병변으로 이해되지 못하였다[5,6].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벼락같은 질환을 가리켜 “아포플렉시아(apoplexia)”라 명명하였다. 이는 그리스어로 “위에서 강하게 내리치다(struck down with violence)”라는 뜻으로 질환의 급작성과 폭력성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학파는 신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뇌가 감각과 운동의 중심임을 선언하는 철학적 도약을 이루었으나 뇌졸중의 원인을 차가운 점액(phlegm)이 뇌로 흘러들어 발생한다는 체액설(humorism)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Fig. 2) [7]. 로마 시대의 갈레노스(Galen)에 이르러서도 아포플렉시아는 전신적 기운의 차단으로 이해되었으며 뇌의 특정 부위에 생긴 병변으로 설명하는 관점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8].
2. 바람(風)의 은유: 고대 인도와 동아시아의 전체론적 접근
서구에서 아포플렉시아가 내리침의 은유였다면 동양에서는 바람(風)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동아시아 의학에서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에서 이를 “중풍(中風)”이라 칭하였다[9]. 이는 예고 없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꺾어버리는 거센 바람처럼 뇌졸중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편측마비와 안면마비를 남기는 양상을 자연 현상에 빗대어 표현한 탁월한 은유였다.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Ayurveda) 의학 역시 반신마비를 뜻하는 “팍샤가타(Parkshaghaata)”와 언어장애를 바람의 성질과 연 결되는 바타 도샤(Vata dosha)의 극단적 불균형으로 설명하였다[10]. 이러한 전통 의학은 뇌졸중의 임상 양상을 정교하게 분류하고 예방적 생활 관리를 강조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고대 인도와 동아시아에서도 질병을 기혈(氣血)이나 생명에너지 등 전신적 조화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11]. 이러한 관점은 출혈과 허혈이라는 서로 다른 병태생리를 구별하고 병변을 뇌의 특정 구조로 국소화하는 근대적 신경해부학과 병리학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결국 19세기 말 동아시아에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일본 의학계가 “apoplexy”의 번역어로 “뇌졸중(腦卒中)”이라는 한자어를 정립하였고, 이 용어가 한국에까지 확산되는 과정에서 병인론의 중심은 바람이라는 기상학적 은유로부터 뇌혈관 병변이라는 해부병리학적 실체로 이동하게 되었다.
3. 지식의 보존과 임상의학의 태동: 중세 이슬람 의학
중세 유럽의 의학이 종교적 권위와 4체액설에 영향 아래 정체되어 있는 동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그리스 의학의 유산이 보존되고 발전하였다. 이븐 시나(Avicenna)는 불후의 명저 “의학정전(The Canon of Medicine)”에서 아포플렉시아를 비롯한 신경계 질환을 방대하게 기술하였다(Fig. 3). 그는 선행 증상, 호흡의 양상, 마비의 범위, 의식 수준에 따라 뇌졸중의 예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였고, 이러한 세밀한 임상 관찰은 훗날 르네상스 유럽으로 이어져 근대 의학이 만개할 수 있는 귀중한 토대가 되었다[12].
4. 뇌혈관의 지도를 그리다: 근대 해부학과 병리학의 혁명
뇌졸중이 수천 년의 형이상학적 굴레를 벗고 실체적 질환으로 형태를 갖춘 것은 17세기 해부학의 발전 덕분이다. 1658년 스위스의 의사 요한 야콥 베프퍼(Johann Jakob Wepfer)는 부검을 통해 뇌졸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에서 대량의 혈종을 발견하며 아포플렉시아의 원인이 혈관의 파열에 있음을 최초로 입증하였다[13]. 이어 영국의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는 뇌 기저부의 동맥륜, 즉 윌리스고리(Circle of Willis)를 구조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뇌혈류의 순환과 측부 순환 개념을 확립하였다(Fig. 4) [14].
이후 19세기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가 혈전증(thrombosis)과 색전증(embolism)의 병리 기전을 규명하면서 뇌졸중은 마침내 전신적 불균형이 아닌, “뇌혈관의 국소적 순환 장애로 인한 뇌 조직의 손상”이라는 명확한 현대적 정의를 획득하게 되었다[15].
5. 운명에서 통제 가능한 위험으로: 역학과 예방의학의 대두
20세기 중반 역학(epidemiology)의 발전은 뇌졸중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프레이밍엄 심장 연구(Framingham Heart Study) 등을 통해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강력한 위험인자들이 규명되었다(Fig. 5) [16].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대규모 인구 기반 연구들은 위험인자의 목록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켰다. 비만과 신체 활동 부족, 식이 패턴(과도한 나트륨, 적색육 섭취, 부족한 과일, 채소, 통곡물 섭취), 알코올, 만성 신질환과 같은 행동학적 대사적 요인이 추가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대기오염, 이상 온도, 납 노출 등 환경적, 직업적 요인까지 포괄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의 종합 분석인 Global Burden of Disease (GBD) 2021 연구에 따르면 19가지의 조절 가능한 위험인자가 전 세계 뇌졸중 장애보정생존년수(disability-adjusted life-years, DALYs)의 87.0%를 설명하며 그중 상위 5대 위험인자는 높은 수축기혈압(55.5%), 높은 체질량 지수(24.3%), 높은 공복 혈당(20.2%), 대기 미세먼지 오염(20.1%), 흡연(17.6%) 순이었다. 특히 높은 체질량 지수의 기여도는 1990년부터 2019년 사이 57.8% 증가하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는 위험인자의 분포가 시대적, 지역적으로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17].
이러한 위험인자가 규명되면서 임상의 실천 양식도 함께 변화하였다. 혈압계의 보급과 항고혈압제의 개발은 치명적인 출혈뇌졸중의 발생률을 크게 낮추었고 항혈소판제와 스타틴(statin)의 등장은 허혈뇌졸중의 예방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18-20]. 나아가 GBD 2021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뇌졸중 위험인자로 지목된 비만에 대응하여 최근에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glucagon-like peptide, GLP-1)수용체작용제 계열의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포도당의존인슐린자극폴리펩타이드(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GLP-1이중작용제인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 소듐-포도당공동수송체2 (sodium-glucose cotransporter 2) 억제제와 같은 당뇨병 신약들이 체중과 혈당을 동시에 조절함으로써 뇌졸중을 포함한 심뇌혈관 사건의 위험을 낮춘다는 근거가 축척되고 있다[21-23]. 신의 벼락이나 피할 수 없는 바람으로 여겨졌던 뇌졸중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예방 가능한 만성 질환”의 결과로 재정의되기에 이르렀다.
6. Time is Brain: 분 단위 치료와 현대 신경과의 진화
뇌졸중 역사의 가장 극적인 혁명은 신경영상 기술의 발전과 급성기 치료의 도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신경과 의사는 환자 앞에서 정교한 신경계 진찰을 통해 병변의 위치를 찾아내는 국소화(localization)에 탁월한 진단가(diagnostician)였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뇌 손상을 되돌릴 마땅한 무기가 없었기에 “진단은 하되 치료는 하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한계와 마주해야 했다.
이러한 한계의 첫 번째 돌파구는 영상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서 찾아왔다. 1971년 Sir Godfrey Hounsfield가 개발한 컴퓨터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 CT)이 임상에 도입되면서 출혈뇌졸중과 허혈뇌졸중을 신속하게 감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후 혈전 용해 치료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핵심 전제 조건이 되었다[24]. 1980년대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의 임상 도입에 이어 1980년대 후반 Le Bihan 등이 개발한 확산강조영상(diffusion-weighted imaging)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임상에 본격 도입되어 CT로는 수시간이 지나야 보이던 허혈 병변을 조기에 검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을 다투는 급성기 의사결정의 토대를 마련하였다[25].
또한 1990년대를 전후하여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입, 확산된 뇌졸중집중치료실(stroke unit)은 다학제 전문 인력에 의한 표준화된 급성기 관리와 조기 재활을 통합 제공함으로써 뇌졸중 후 사망 및 의존성 위험을 약 20% 감소시키는 것이 입증되었다[26]. 이는 단일 약물이나 시술의 효과를 넘어 의료 시스템 자체가 뇌졸중 예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 분기점이었다. 국내에서도 2007년 대한뇌졸중학회가 뇌졸중전문 치료실의 설립 권고안을 마련한데 이어 2012년 9월 학회 주도의 인증제도가 본격 시행되었고, 2017년 10월 보건복지부 고시로 “뇌졸중집중치료실” 수가가 신설되면서 학회 차원의 자발적 노력이 비로소 국가 의료제도 내에 안착하게 되었다[27]. 이러한 기반 위에서 학회는 2018년부터 뇌졸중센터(stroke center) 인증사업을 시작하여 2019년 9월 최초 58개 병원을 인증하였고 2021년부터는 인증 체계를 기본 “뇌졸중센터(stroke center)”와 혈관 내 혈전 제거술(endovascular thrombectomy) 수행능력까지 갖춘 “재관류 치료 뇌졸중센터(thrombectomy-capable stroke center)”의 2단계로 확장하였다. 2024년 말 기준 78개의 재관류 치료 뇌졸중센터와 10개의 뇌졸중센터로 총 88개 기관이 인증, 운영되고 있으며, 119 구급대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환자 이송 단계부터 표준화된 진료 체계가 가동되고 있다[28].
이러한 영상, 시스템 기반에서 1997년 미국식품의약국(United State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정맥 내 혈전용해제인 재조합 조직 플라스미노겐활성제(recombinant tissue plasminogen activator)를 급성 허혈뇌졸중 치료제로 승인하였고, 2015년 다섯 건의 무작위 대조시험(MR CLEAN, EASCAPE, EXTEND-IA, SWIFT-PRIME, REVASCAT)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혈관 내 혈전 제거술이 대혈관 폐색에 대한 표준 치료로 확립되었다[29,30]. 나아가 2018년 DAWN과 DEFUSE-3 연구는 영상 기반 환자 선별을 통해 혈전 제거술의 시간창을 24시간까지 확대시켰고, 이는 발병 시각이 불분명한 환자에게도 재개통 치료의 길을 열어주었다[31,32]. 가장 최근에는 2025년 FDA가 단회 정맥 주사로 투여 가능한 테넥테플라제(tenecteplase)를 급성 허혈뇌졸중 치료제로 승인하면서 혈전 용해 치료의 신속성과 접근성이 한층 개선되었다[33].
결 론
뇌졸중의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뇌를 이해해 온 지성사(知性史)이자 통제 불가능한 미지의 공포를 이성의 힘으로 극복해 온 문명사(文明史)의 기록이다. 이러한 뇌졸중은 신의 형벌이나 악령의 장난으로 여겨지며 미지의 공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해부학과 병리학의 발전을 통해 그 실체가 규명되었고 역학적 발견을 통해 예방의 길이 열렸으며 마침내 현대 의학에 이르러 막힌 혈관을 직접 뚫어내는 즉각적 치료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장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끊임없이 뇌의 신비를 탐구하고 환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신경과 의사들이 있다. 질병의 세밀한 관찰자에서 예방의 설계자를 거쳐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응급 현장의 중재자로 진화해 온 신경과의 학문적 정체성은 곧 뇌졸중 극복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에도 환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계의 초침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신경과 의사들의 헌신은 신경과학이 도달한 가장 숭고한 성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