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그린 뇌졸중: 진실과 오해
Cinematic Stroke: Evaluating the Scientific Validity of Its Portrayal in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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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의 대중 예술인 영화는 그 의도에 따라 흔히 의학적 소재를 도입한다. 아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질환은 시한부 생명과 관련 있는 암일 것 같지만, 노령 인구의 대표적인 중증 질환인 뇌졸중도 간혹 사용된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몇몇 예를 통해 영화가 그린 뇌졸중의 진실과 오해를 논의하고자 한다[1-4].
드라큘라(Dracula)
나무들만 울창한 컴컴한 산 속에 음산한 성, 여기에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 인간이 살고 있다는 영화 <드라큘라>는 일단 재미있다. 이에 비하면 브람 스토크의 소설은 꽉 찬 한 권의 장편 소설로 게임이나 유튜브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잘 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영화로 각색한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드라큘라 역시 영화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의 글이 매우 미려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쓴 글인데도 마치 최근 작가의 글처럼 문장이 간결하고, 박자감 있고, 군더더기가 없다. 영화, 뮤지컬 등으로 여러 차례 내용이 재생산되었지만 책을 읽는 것만큼 드라큘라의 풍성한 변주를 즐기거나 그 묵직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자의 피를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어둠 속에서만 살 수 있는 남자는 다양한 사랑과 삶의 방식을 억압하는 도덕적 가치와 기독교 문명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일정한 길을 강요하는 폐쇄된 사회에서 드라큘라가 되고 싶은 남성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필자는 드라큘라의 단 한 장면만을 말하려 한다. 박쥐들이 출몰하는 지역에 아침이 밝자 렌필드가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소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내의 숨결이 불안정한 헐떡임으로 바뀌어, 매 순간마다 말을 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의식 불명 상태로 되돌아 가곤 했다.” 그를 살펴본 간호사가 말한다. “아마 등뼈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었잖아요.” 그러나 반 헬싱 박사는 생각이 다르다. “뇌의 운동신경 부위 전체가 손상을 입은 것 같네. 뇌출혈이 급속히 증가할 것 같으니 당장에 관상톱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너무 늦어질 것 같네. 신속하게 핏덩어리를 제거해야 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신경과 전문의인 필자가 보기에도 반 헬싱 박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렌필드는 뇌를 다쳐 뇌출혈(경막하출혈인지 기타 두개내출혈인지 알 수는 없지만)이 생긴 것이며 이로 인하여 대뇌의 운동신경이 손상되어 반신마비가 생긴 경우이다. 반 헬싱 박사는 수술을 시작하였고 의식을 되찾은 렌필드는 말한다. “의사 선생님, 나는 끔찍한 꿈을 꾸었는데 그 때문에 힘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꿈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드라큘라와 대적한 이야기, 드라큘라가 자신을 내던져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렌필드의 경우처럼 뇌출혈이 심하거나 혹은 계속된다면 대뇌가 붓게 되고(부종), 그 압력이 심해져 뇌간을 압박하면 의식이 없어지고 호흡이 정지되어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신속하게 두개골을 절개하여 혈종을 제거해야 한다. 반 헬싱 박사는 이러한 원리에 따라 즉시 수술을 시행하였고 그 결과 렌필드는 목숨을 건졌다. 이 책이 쓰인 19세기는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을 믿고 이를 통해 세상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갖던 시대였다. 반 헬싱의 의학에 대한 논리적인 이해와 과학적 치료는 이런 믿음과 상응한다. 그러나 책과 영화의 주인공 드라큘라는 이러한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 드라큘라는, 아니 브람 스토커는 이로부터 얼마 후 인간의 이성과 윤리를 비웃는 무자비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사실 컴퓨터와 인공지능 시대를 건너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드라큘라는 우리들의 뒷목을 바라보며 조롱 어린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큘라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뇌졸중에 의해 반신마비가 생긴 다른 환자를 만나 보자.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러드로우 대령(안소니 홉킨스 분)은 퇴역 후 몬태나의 외딴 들판에 집을 짓고 세 아들과 함께 산다. 여기에 셋째 아들 새뮤얼(헨리 토마스 분)은 도시에서 사귄 애인 수잔나(줄리아 오몬드 분)를 데리고 온다. 세 형제는 모두 수잔나를 좋아하지만 수잔나는 이 중 가장 거칠고 순수한 둘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분)을 좋아한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여기에 참전한 막내는 전사한다. 장남 알프레드(에이단 퀸 분)는 수잔나와 결혼하려 하지만 수잔나가 트리스탄과 육체 관계를 갖는 것을 알고 도시로 떠난다. 트리스탄은 수잔나와 얼마간 함께 살지만 형제들에 대한 죄의식과 방랑벽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날 잊고 다른 남자를 찾으라는 편지를 남긴 채. 이 사실을 알고 러드로우 대령은 크게 상심하는데, 그날 저녁 대령은 쓰러진 채 발견된다. 다음은 영화에서 본 대령의 상태이다.
첫째, 대령은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었다. 처음에는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지냈지만 점차 회복되어 남의 도움을 받으며 걸었고, 나중에는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둘째, 대령은 말을 하지 못하였다. 처음에 그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였으나 아들이 돌아오자 칠판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어느 정도는 의사를 표현하였다. 이 증세도 점차 호전되어 나중에는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대화는 가능해졌다. 셋째, 대령의 얼굴이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얼굴이 주로 그랬다. 눈이 감겨 잘 뜨지 못하였고(왼쪽 눈은 뜨고 있었다) 입술도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대령의 뇌는 어느 곳이 손상된 것일까?
일단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된 것으로 보아 렌필드의 경우처럼 왼쪽 대뇌의 운동 중추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말을 못한 것은 두 가지 다른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발음장애(혹은 구음장애)로 우리가 말을 할 때 사용하는 혀와 입술, 목구멍, 근육 등을 움직이는 뇌 부분, 즉 대뇌 운동신경의 가장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을 말한다. 둘째는 실어증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뇌가 관장하듯, 언어 구사도 뇌가 관장한다. 우리의 언어 중추는 뇌의 왼쪽,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의 경계 부위에 전문화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실어증, 즉 언어기능장애는 왼쪽 뇌가 손상된 사람한테만 생긴다. 언어 중추의 손상된 위치에 따라 말을 알아듣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경우(운동실어증, motor aphasia),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감각실어증, sensory aphasia), 이 둘을 모두 못하는 경우(완전실어증, global aphasia) 등의 증세를 갖게 된다.
러드로우 대령의 경우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으니 왼쪽 대뇌에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실어증 증세를 보일 수는 있겠다. 처음에는 말을 전혀 하지 못하였으니 발음장애인지 실어증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는 말을 못하는 중에도 아들의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듣고 칠판 글씨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실어증이 아닌 발음장애였거나 아주 심하지는 않은 실어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둘을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얼굴이 일그러진 증상은 해석하기 곤혹스럽다. 앞서 말한대로 얼굴 움직이는 근육은 운동 중추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그러므로 운동 중추가 손상되면 팔다리와 함께 얼굴 반쪽도 흔히 마비된다. 당연히 얼굴 마비는 팔다리 마비와 같은 쪽(모두 왼쪽, 혹은 모두 오른쪽)일 것이다. 즉 대령은 오른쪽 팔다리 마비 상태이므로 얼굴 마비도 오른쪽에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령의 오른쪽 눈은 거의 감겨져 있으며 입술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눈을 감으려면 눈을 감는 근육에 힘이 있어야 하며 입술을 움직이려면 안면 근육에 힘이 있어야 한다. 즉 대령의 증상을 보면 오히려 왼쪽 얼굴 근육보다 오른쪽 얼굴 근육에 힘이 있다는 얘기가 되니 뭔가 좀 이상하다.
결국 대령은 오른쪽 팔다리 마비에 왼쪽 안면 마비 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니 헷갈린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대뇌가 아니라 뇌간(brain stem)의 어느 특정 부위에 뇌졸중이 온다면 얼굴 마비와 팔다리 마비의 방향이 반대로 올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필자로서는 오른쪽 얼굴 마비의 현상을 착각한 연출자의 실수인 것 같다. 고요한 물이 흐르는 듯한 뛰어난 작품에 돌 한 개가 요란하게 던져진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뇌졸중에는 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져 생기는 뇌출혈의 두 가지가 있다. 대령의 뇌졸중은 둘 중 어느 것일까? 사실 전산화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 CT)이나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과 같은 촬영 기술이 없었던 1910년대가 배경인 이 당시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몇 가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뇌경색이든 뇌출혈이든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뇌출혈은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로 혈압이 급격히 상승한 사람에게 흔히 발생한다. 대령은 아들과 며느리의 골치 아픈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후 갑작스럽게 쓰러졌으므로 이는 뇌출혈을 의심케 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뇌혈관을 손상시키는 위험 인자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이 있다. 이 중 고혈압은 뇌경색, 뇌출혈 모두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당뇨, 고지혈증은 뇌출혈보다는 뇌경색을 일으키는 위험 인자이다. 대령에게 평소 당뇨, 고지혈증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심한 흡연자이다. 심지어 뇌졸중에 걸려 절뚝거리고 입이 돌아간 상태에서도 담배만은 계속 피우고 있다. 흡연 역시 뇌출혈보다는 뇌경색을 더 잘 일으키므로, 이런 점에서 보면 대령의 뇌졸중은 흡연에 의한 뇌경색일 가능성도 있다.
사실 20세기 초반이라면 뇌경색이든 뇌출혈이든 어차피 마땅한 치료가 없었으므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하지만 현재는 급성 뇌졸중 환자에서 뇌경색인지 뇌출혈 인지 구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일단 CT를 찍어 이를 확인해야 한다. 뇌출혈이라면 급성기에 출혈 부위가 하얗게 보일 것이며, 뇌경색이라면 아직 뇌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뇌경색으로 판단된 경우라면 혈전에 의해 막힌 뇌혈관을 뚫는 재조합조직플라스미노젠활성제(recombinant tissue plasminogen activator, rTPA)를 주입한다. 1995년 대규모 임상 연구가 성공한 이후 rTPA는 급성 뇌경색의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rTPA는 뇌출혈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뇌출혈 환자라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환자들 중에는 rTPA를 써도 효과가 충분치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주로 경동맥이나 중대뇌동맥과 같은 커다란 동맥이 혈전으로 막힌 환자들이다. 그래서 요즘 의사들은 혈관 속에 카테터를 삽입하여(대개 사타구니의 혈관을 통해 뇌혈관까지 진입시킨다) 혈관이 막힌 부위까지 진입시킨 후 혈전을 기계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인 혈전제거술(thrombectomy)을 사용한다. 러드로우 대령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응급실에서 CT를 찍고, CT에 뇌출혈이 보이지 않는다면 rTPA를 썼을 것이다. 이후 magnetic resonance angiography (MRA)나 CT angiography (CTA)를 사용하여 커다란 혈관의 폐색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일 혈관 폐색이 있다면 혈전제거술을 시행하여 환자의 증세를 호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rTPA나 혈전제거술 모두 매우 신속하게 시행해야 그 효과가 있다. rTPA는 증상 발생 후 4.5시간 이내에, 혈전제거술은 24시간 이내에 시행해야 한다. 만약 치료가 더 늦게 시행된다면 이미 막힌 혈관에 의한 뇌손상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 있으므로 혈관을 뚫는 치료를 하더라도 증세가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나라가 작고 인구는 많은 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일찍 병원에 도착할 수 있어 이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러시아와 같이 면적이 크고 인구 밀도가 희박한 지역에 사는 국민들은 큰 병원까지 빨리 도달하기 어려워 효과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러드로우 대령의 경우 몬태나의 시골에서 웬만한 병원까지 가려면 여러 시간 드라이브를 해야 할 것이니 소위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환자의 헬기 수송, 원격 진료, mobile stroke unit (구급차 안에 신경과 전문의, CT 장비 등이 모두 구비되어 구급차로 이동 중 rTPA 치료가 가능) 등의 방법들이 현재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사는 게 복잡해서 그렇지, 뇌졸중의 빠른 치료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처럼 작고 오밀조밀한 곳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신경과 의사를 헷갈리게 한 영화 제작자들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연출자들이 의사들의 전문적 검토 없이 대충 영화를 만드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그러나 얼굴 마비만 제외한다면 안소니 홉킨스의 뇌졸중 환자 연기는 훌륭하였다. 특히 대령의 오른쪽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가 서서히 좋아지는 모습은 매우 그럴듯했다.
넬(Nell)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은 매우 발달된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상호 간 다양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찬란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언어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우리는 말을 사용해서 남을 헐뜯고 욕하며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즉 언어는 화력이 좋은 최신식 무기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복잡한 언어가 없었던 옛 조상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더 행복하였을까? 아니면 문제가 많더라도 언어를 구사하는 문명 인간으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영화 <넬>은 이런 주제를 천착하기 위하여 실어증 환자를 제시한다.
앞서 <가을의 전설>에서 설명하였듯이 언어 중추의 앞쪽은 말을 구사하는 역할을 하며(운동언어 중추) 뒤쪽은 남의 말을 알아듣는 기능을 하므로 언어 중추의 앞 부분만 손상되면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다(운동실어증). 반대로 언어 중추의 뒤쪽이 손상되면 자신이 말은 할 수 있지만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감각실어증). 언어 중추가 모두 손상되어 말을 할 수도, 알아듣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완전실어증). 이제 영화를 들여다보자.
좀처럼 사람이 찾지 않는 외딴 골짜기, 한 오두막집에서 어떤 여자가 사망한 것이 발견된다. 이런 연락을 받은 마을의 가정의(家庭醫) 제리 로벨(니암 리슨 분)은 그곳으로 향한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괴성을 질러대는 한 소녀(조디 포스터 분)를 발견한다. 이때 제리는 집안에서 성경에 쓰인 메모를 발견한다. “주님께서 당신을 이리로 인도하셨습니다. 나의 넬을 지켜주세요.”
괴상한 말을 사용하는 넬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제리는 언어 심리학자 폴라 올슨(나타샤 리차드슨 분)과 더불어 넬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넬의 언어는 해독이 불가능하였지만 그들은 그 이상한 언어가 다름 아닌 영어라고 단정지었다. 넬의 엄마가 구사했던 불완전한 영어였다. 넬의 엄마는 뇌졸중에 걸려 안면 마비와 실어증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후 세상이 두려워져 이 외딴 곳에 숨어서 딸을 키워 왔던 것이다.
넬의 언어를 분석해 보자. 이미 말했듯 그 언어는 영어이지만 매우 불안전한 영어이다. 예컨대 넬이 “스피-”라고 말하는 것은 “스피크(speak)”라는 의미이다. 이런 영어를 엄마로부터 배웠다면 넬의 엄마는 운동성 언어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때 환자는 말을 구사하기가 힘들며 흔히 발음이 어둔해진다. 종종 이들은 단어를 끝까지 발음하지 못한다. 즉 엄마는 “스피크”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스피-”까지 한 것이고 넬은 이를 “스피크”의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넬은 “마사”를 ‘작다’는 뜻으로, “어나”를 ‘크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세상에 이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어증 환자들은 종종 이처럼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지갑’을 “자갑”이라 하는 경우인데 이런 현상을 착어증(paraphasia)이라고 한다. 착어증이 심한 경우는 아예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예컨대 ‘지갑’을 “디다”라고 하면 그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를 신어조작증(neologism)라고 한다. 이것으로 넬의 엄마는 언어 능력이 심각하게 소실된 실어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문가를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를 드러낸다. 넬의 엄마가 보였던 언어장애의 증상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잘못된 언어 규칙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이의 말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였다면 엄마의 증세는 운동실어증일 가능성이 높다. 불완전한 발음과 안면 마비를 함께 보였던 점 또한 이런 진단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문제는 착어증과 신어조작증이다. 물론 운동실어증 환자도 착어증을 보이기는 한다. 가령 ‘탁자’를 “착자”와 같이 발음할 수 있다. 이처럼 글자 하나를 잘 못 발음하는 경우를 음소착어증(phonemic paraphasia)이라 한다. 하지만 “마사,” “어나”와 같은 완전한 신어조작증을 사용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심한 감각실어증 환자에게 관찰된다. 즉 넬의 엄마는 심각한 감각실어증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아이와 대화를 하기가 불가능했어야 한다는 모순에 다다른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이러한 실어증 환자와 함께 고립되어 성장한 어린이가 그런 불완전한 언어를 학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반짝이는 아이디어이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실어증 환자들의 착어증이나 신어조작증은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어조작증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즉 ‘작다’는 의미로 “마사”라는 말이 한번 튀어나왔다고 해서 다음 번에도 같은 의미로 “마사”라고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린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관적이고 반복적인 언어 자극이 주어져야 하는데, 어머니의 착어증을 통해 넬이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실어증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영화가 관객들에게 줄기차게 던지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처음으로 문명에 노출된 넬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제리는 이 장소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넬을 지금처럼 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폴라는 넬을 도시로 데리고 가서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으로 둘이 옥신각신 다투고 있을 즈음 이상한 언어를 사용하는 야생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고, 이 한적한 지역은 TV 방송국 헬기가 뜨는 등 시끄러워진다. 제리와 폴라는 넬이 문명 세상과 익숙해지도록 그녀에게 대도시 이곳 저곳을 구경시킨다. 하지만 세상은 이 야생녀에 호의적이지 않다. 당구장에 들어간 넬에게 불량배들은 가슴을 노출하도록 꼬드기고 권위 있는 대학병원의 의사는 넬을 병원에 가두어 놓고 연구하려고만 한다.
넬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도와준 사람은 물론 제리이다. 그런데 제리는 오랫동안 가족이 많은 친구들을 부러워해 왔던 고독한 외아들이었다. 따라서 사회와 떨어져 홀로 남은 넬에 대해 동질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지적이고 자신만만해 보이던 폴라 역시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 편모 슬하에서 자란 여인임이 밝혀진다. 문명 사회에 발을 내디딘 넬과 첫눈에 공감을 형성한 여자는 보안관의 아내 메리이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영화에 안 나오지만 아마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넬과 메리는 한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깊이 서로를 이해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는 현대인들도 실은 외로움, 가족 해체,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히려 말을 못하지만 고요한 숲과 흐르는 강물처럼 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넬이 이들 모두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존재로 부각된다. 넬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숨긴 채 다투고만 있는 제리와 폴라를 연결하여 이들의 마음을 서로 통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야생녀로 살아 갈 수 없게 된 넬은 법정 청문회 때까지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런 와중에 넬은 서서히 인간 사회에 눈을 뜨고, 법정에 선 그녀는 제리에게 통역을 부탁하여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의 언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지만, 넬과 바깥 세상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마지막 길은 역설적으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었던 것이다. 결국 넬은 문명 사회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즉 이 영화는 언어가 없는 야생 자연보다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어와 문명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간이 살아가야 할 터전으로 본 것이다. 또한 자연과 조화되는 건강한 문명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일깨워 준다.